전날 밤 비가 조금 왔는지 도로 위엔 아직 물기가 남아 있었고, 공장 앞 배수구에서도 빗물이 천천히 빠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물 위로 희미하게 기름이 떠오르는게 보입니다.
그날 오후, 평소보다 늦은 시간에 주문 메일이 하나 들어왔습니다. 의약품을 생산하는 곳인데, 저희 제품 중 ‘주사위 필터’를 정기적으로 주문하시는 곳이죠. 이번에는 수량이 꽤 많았습니다. 입고 확인을 마치고 나니, 어느새 하루가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꼭 필요한 제품
주사위 필터는 저희 티투컴 제품군 중에서는 매출 비중이 크지 않은 편입니다. 하지만 유독 몇몇 업체에서는 꾸준히 찾으십니다. 공통점이 있다면, ‘기름과 물이 섞여 흐르는 환경’을 관리해야 하는 곳이라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의약품 생산 과정에서도 설비 세척 후 배수나, 기계 윤활 과정에서 소량의 오일이 물과 함께 흐르는 일이 종종 생깁니다. 이걸 그냥 흘려보내면, 배수관 벽이나 바닥에 유막이 남고, 악취나 오염의 원인이 되기도 하죠. 특히 클린룸이나 무균 설비를 사용하는 공장에선 이런 잔여물도 민감한 이슈가 됩니다.
그럴 때 사용되는 게 바로 이 필터입니다. 이름처럼 크기가 작고, 생김새도 단순해 보이지만, 내부 구조는 유수분리(기름과 물을 분리하는) 기능에 맞춰 설계되어 있습니다. 배수구나 수로에 끼워 넣기만 하면, 물은 통과시키고 기름은 걸러내는 방식이죠.
이번 주문, 왜 갑자기 많아졌을까?
이번엔 평소보다 수량이 많았습니다. 궁금해서 고객 담당자에게 짧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요즘 설비가 좀 늘어났어요. 세척 라인이 늘어나면서 배수구 쪽 관리도 강화하고 있거든요.”
이 업체는 이미 몇 년째 저희 필터를 쓰고 계신데요, 초기에 몇 번 테스트를 거쳐 적합하다고 판단하신 후로는, 별다른 수정 없이 그대로 사용하고 계십니다. 제품이 ‘티가 나지 않아서 좋다’는 말도 기억에 남습니다. 뭔가 설치돼 있다는 사실조차 잊을 만큼, 현장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는 뜻이겠죠.
소량씩 꾸준히 쓰시다가, 갑자기 대량 요청이 오면, 뭔가 현장의 변화가 있다는 시그널이기도 합니다. 설비가 늘었든, 관리 기준이 바뀌었든, 어쨌든 ‘대응의 기준선’이 달라졌다는 의미죠.
우리는 작은 요청에서 변화를 읽습니다
주사위 필터는 가공이 까다로운 제품은 아닙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신경 씁니다. 구조는 단순하지만, 내부 원단의 조합이나 접착력, 통과 유량 같은 세부 조건이 조금만 달라도 효과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반복 생산이라도, 출고 전에는 반드시 샘플링 테스트를 거칩니다. 이번에도 2개씩 랜덤 확인을 했고, 포장 전 실밥 마감과 밀봉 상태까지 체크했습니다. 어차피 눈에 잘 띄지 않는 제품이라면, 더 조용하게 제 역할을 해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작지만, 기술력을 보여주는 제품
사실 티투컴에서 만드는 수많은 유흡착 제품들 중에서도, 주사위 필터는 ‘대표작’이라고 부르긴 어렵습니다. 수량도 많지 않고, 납품 단가도 높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내부에선 종종 이런 얘기를 합니다. “이거, 기술력 보여주기엔 딱 좋은 제품이에요.”
작지만 정교하고, 단순하지만 명확한 기능. 특히 고객이 설치 후 별말 없이 그대로 다시 주문하는 제품이라면, 그건 성능이 충분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번처럼 갑자기 수량이 늘어날 땐, 그 신뢰가 외부 기준으로까지 확장된 결과일 수도 있고요.
주사위 필터, 다음은 어디에 들어갈까요?
이번 출고는 의약품 업체였지만, 사실 이 제품은 반도체 세척 라인, 화학 실험실, 전자부품 공장 등에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크기가 작고 설치가 간편해서, 배수나 수로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적용 가능하다는 장점 때문입니다.
저희가 바라는 건 단순합니다. 제품 자체보다, 그것이 설치된 현장이 더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 기름 걱정 없이 물이 흐르고, 불필요한 청소나 오염 걱정 없이 공간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일. 주사위 필터 한 장이 그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이번 제품도 조용히, 하지만 정확하게 제 역할을 해주길 바랍니다.
— 티투컴 대표 김병우 드림




